https://youtu.be/qvZWAHEPj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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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yrVXacxzLK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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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xm4FATEvW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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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김대중 대통령이 1998년 CNN 인터뷰에서 언급했듯, "제주 4.3은 공산폭동" 이었다. 누가 어떤 시각에서 보든, 이 객관적 사실을 뒤집을 수는 없다.

이 사건 자체가 1948년 4월 3일 새벽 김달삼을 비롯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의 좌익세력들이 무장봉기해 제주도 내 경찰서들을 일제히 습격하고 민간인들을 살해하며 시작됐다.

이들은 총선거와 정부수립, 건국을 방해하려 봉기를 일으켰고, 통일 공산정부 수립을 주장했다. 민간인을 거짓 선동해 자신들의 총알받이로 삼았던 김달삼 본인은 사태 도중 북조선으로 탈출해 훈장을 받았다.

남로당의 무장선동으로 제주도 전체가 거대한 전쟁터가 됐고, 진압군에 의해 10,955명이, 남로당 무장대에 의해 1,764명이 희생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4.3은 공산폭동이었지만,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이 많으니 누명을 벗겨줘야 한다" 라고도 적시했다. 이 부분 역시 객관적 사실이다.

원인제공은 분명히 북조선과 그 지령을 받는 남로당 좌익들이 했지만, 교전과정에서 쌍방의 희생이 있었고, 당연히 무장수준에서 뒤떨어지는 남로당측의  사망자수가 정규군보다 많았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히 해야 할게 있다.

전쟁에서 피아구분이 스타크래프트 게임하듯이 딱딱 떨어지는게 아니란 거다. 남로당과 그 협조자들을, 해방공간의 무법천지에서  그렇게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고 믿나? 언어와 종족마저 같다.

당신이 당장 전쟁터의 군인인데, 산속에서 마주친 의심스러운 민간인들이 당신을 습격할 빨치산과 그 협조자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 일단 피아구분 먼저 하자 라는 생각이 들 것 같나? 관심법 쓰나? 당신이 죽으면 다 끝난다. 그 전에 먼저 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게 정상 아닌가?

군인이 아닌 우익 시민들의 입장도 생각해 봐라. 다른 모든 걸 떠나서, 남로당 무장대가 4월3일 새벽 2시에 봉기해 경찰서와 민가를 습격해 당신의 친구들을 죽였는데 당연히 몇배로 갚으려 들지 않겠는가?

결국 4.3에 휘말려 희생된 민간인들이 존재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나, 진압군에 의해 죽은 사람들은 어느 나라의 무장폭동 진압 과정에서든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이부분에 대해 한국 정부가 사과한다면, 남로당 무장대에 의해 살해당한 수 또한 1,764명. 6:1의 비율로 만만치 않았다. 320명의 군인/경찰을 제외해도, 1,444명의 민간인 피살자가 있다. 이들은 누구에게 사과를 받아야 하나?

적국과 내통해 뒤에서 아군을 치는 반란군을 교전중 사살하는 건 정상국가의 상식이다. 남로당 무장대와 그 협조자들을 제거하는 것은 군의 당연한 임무다. 오히려 이를 방기, 제주도를 무법천지로 만든다면 그게 국가의 배임 아닌가? 아니라면, 애초에 4.3 폭동 진압 자체를 포기하고, 제주도를 남로당이 장악한 공산주의 국가로 별도 독립시켰어야 하나?

그래서, 지금 대통령과 집권세력의 국가관과 4.3 인식 자체가 편향적이고 종북적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요는, 이는 한국 정부가 사과할 일이 아닌, 애초에 봉기를 일으켜 이런 무질서의 상호확증살해 이유를 만들어낸 남로당 배후의 북조선 정부가 사과할 일이라는거다.

서울의 봄,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부마항쟁을,
제주도 4.3 공산폭동과 함께 언급하는 것 자체가 서울, 광주, 부마를 종북 공산 국가전복운동으로 격하시키는 짓이다.

4.3은 엄연한 공산 폭동이었으며, 그 주도자와 의도가 이미 팩트로 밝혀진 사건이다. 일방 학살도 아닌, 쌍방교전이었으며, 그 와중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한 일반인 피해자들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한국 정부가 비난받고 사과만 해야 할 일도 아니라는 거다.

그 진압이 아니었다면, 제주도는 지금 한국이 아닌 극빈 사회주의 국가든지, 북조선의 멀리떨어진 월경지였을것이다. 정말 그걸 원하는 것인가?

결국 이는 한국이라는 성공적 국가의 건립 과정에서,
국가가 안전보장의 기본 임무를 하던 과정이었으며, 난리통 속에서 발생했을 수 있는 억울한 희생자와 그 누명을 벗겨줄 필요도 있지만, 그 잘못은 한국 정부가 아닌 북조선과 남로당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공정한 평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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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임종석이 비서실장 되어 주사파가 검색어 1위를 할 때 그에 대해서 NL관련 글을 쓴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다른 팩트를 가지고 써본다.

대통령 비서실장인 임종석은 이번 문재인 정부에서 3차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임명받았다.

그는 1989년 전대협 의장을 맡으면서 국보법과 집시법 외 10여 개의 법률을 위반하여 10만장의 수배지와 경찰을 피해 도주하고 살았던 공개수배자였다. 임수경의 방북을 철저히 도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 받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의해 특별 사면이 되었다.

여담으로 임수경은 다들 누구인지 알겠지만 북한의 독재가 싫어 남한으로 넘어온 탈북자들을 향해 변절자XX 라는 단어를 사용한 사람이다.

그러한 임수경의 방북을 돕다니 둘이 무슨사이인지 궁금할 뿐이다.

참고로 현 바른미래당 하태경의원 역시 같은 전대협 출신이었고 당시 임종석, 임수경 등과 같이 활동했었다.

임종석은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하여 서울 성동구에 출마하여 정계 입문을 하게 된다.

그러한 그의 첫 의정활동은 북한인권법 제정을 반대하는 정책이었다.
그리고 국가보안법 폐지, 대북 교류사업 등을 주로 정책사업으로 삼고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2014년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설립하고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 재단에서 임종석은 대한민국내 북한 저작물 이용 저작권료를 북한에 송금지불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북한의 독재자를 향한 애정어린 충성심이 남다른건 확실하니 인정해줘야겠다.

임종석은 노무현 정부 당시 대북송금 특검수사에도 적극 반대한바있다.

대북송금특검수사란 2000년 6월 김대중 정권 때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5억달러(5,332억)를 불법송금한 사건을 말한다.

그런 발자취를 남겨주신 임종석 비서실장에게 남북정상회담 위원장을 맡겨줬으니 세번째 정상회담을 통해 독재자에게 우리나라 혈세를 또 얼마나 퍼줄지 궁금해졌다.

이번에도 과연 얼마를 김정은의 손에 쥐어줄지 곳간에서 돈이 줄줄 새는 소리가 벌써 들리는것 같다.

근데 35년 후에 내 국민연금 받을 수 있을지 나는 왜 자꾸 의심이 드는걸까.

그의 명언이 있다.(열린우리당 입법추진위 당시)
“국가보안법은 위헌적이며 반(反)민주 악법의 상징이기에 폐지해야 한다” -임종석

나는 그가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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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 알고 있나, 영화가 보여주지 않은 30년 전 6월 항쟁의 ‘불편한 진실’
영화 ‘1987’을 2017년 12월 31일 저녁 10시에 봤다. 영화를 본 뒤 머리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맞다. 2017년에 우리가 경험한 모든 일은 사실 1987년에 시작된 일이다”였다. 1987년에 심겨진 씨앗이 30년 동안 자랐고, 그 결과 우리는 2017년을 수확하게 되었다.

도대체 1987년에 무엇이 심겨졌기에 30년 후 우리는 대통령 탄핵과 친북·친중 성향의 정부를 맞이하는 쓴 경험을 하게 되었을까? 영화 ‘1987’은 나를 30년 전 역사의 그 자리로 데리고 가서 처음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한 수 한 수의 복기(復碁)를 통해 다시 깨닫게 해줬다.

영화 ‘1987’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스토리의 중심 인물은 박종철 군이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이었던 그는 87년 1월 13일 자정에 하숙집에서 연행된 지 하루 만에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조사실에서 물고문으로 사망했다.

영화는 그의 죽음이 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것만을 묘사할 뿐, 경찰이 왜 그를 연행했는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고 단순히 그를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학생으로만 묘사한다. 과연 그는 순수한 의도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학생이었을까?

박종철은 민주투사가 아니다
박종철 군은 당시 학생 운동권 안에서 ‘제헌의회그룹’(Constituent Assembly Group)이라고 불리는 집단에 소속되어 있었다. 85년 2월 총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양(兩)김씨의 신민당이 제1야당이 되고 이들이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을 요구하면서 개헌국면이 시작되었다.

당시 제헌의회그룹은 직선제 개헌투쟁에 참여하기를 꺼려 했다. 왜냐하면 직선제 개헌 투쟁은 결국 정치적 주도권을 쁘띠부르주아 세력인 신민당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그들이 선택한 전술은 ‘제헌의회’ 소집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에서 1917년 2월 혁명(멘셰비키혁명)이 성공한 뒤 레닌과 볼셰비키는 멘셰비키가 주축이 된 임시정부를 무너뜨리고 혁명의 공간을 만들어내기 위해 제헌의회를 소집할 것과, 권력을 노동자.농민.병사 소비에트에 넘길 것을 주장한 바가 있다.

박종철 군이 속한 제헌의회그룹은 러시아혁명에서 영감을 받아 ‘파쇼 하의 개헌 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라는 구호(slogan)을 채택하고 86년 5월부터 혁명투쟁의 전위부대가 되어 비타협적인 선도적 투쟁을 시작했다. 박종철 군도, 그리고 그를 고문해서 검거하고자 했던 박종운(서울대 사회학과 81학번) 군도 사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라고 보인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인민민주주의였다. 그들은 ‘대학문화연구회’라는 지하서클 소속이었고, 그들의 구호는 그들이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학습했고, 볼셰비키 혁명을 모델로, 레닌을 롤 모델(role model)로 하여 공산혁명 운동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암시한다. 제헌의회 그룹은 당시 주사파(NL파)와 대립하고 있던 영향력 있는 학생운동 세력이었다.

당시 20대의 어린 나이였다는 것과 전술 선택의 미숙함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들이 당시 공산주의 이념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고 보인다. 그러나 영화 ‘1987년’은 이런 점을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영화 '1987' 홍보 포스터 
영화 ‘1987년’에서 미처 다루지 않지만 87년을 이해하기 위해 알고 있어야 할 중요한 사건은 86년 4월 28일에 김세진(서울대 미생물학과 83학번), 이재호(서울대 정치학과 83학번) 두 학생이 전방입소교육에 반대하여 분신(焚身)한 사건이다.

당시 남자 대학생들은 5박6일간 군부대에 입소하여 훈련을 받고 교련 1학점을 이수해야 했다. 이 두 사람은 입소 당일 아침 신림역 사거리에서 전방입소 반대 시위 중 분신했다. 이한열 군의 죽음은 계획되지 않은 사고였지만, 이들의 죽음은 준비된 희생이었다.

그들의 귀중한 생명이 희생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금 감상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대학가에 주체사상파의 등장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기 때문이다. 그 날 시위에서 사용된 구호는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였다.

이런 구호는 주적(主敵)을 군사독재로 보지 않고 미제국주의로 본다. 미군철수와 “한반도 미제 핵기지화 결사 저지”(위키피디아 ‘김세진’ 각주 1번 참고)를 외쳤다는 점에서 이들은 ‘독재타도’를 외쳤던 그 이전의 학생운동과 명확히 구분된다. 이 구호들은 왜 문재인 정부가 원전(原電)마저 제거하는 반핵노선을 걷고 있는지 예언적으로 보여준다.

85년 가을부터 반제국주의(Anti-Imperialism)그룹이란 가면을 쓰고 등장하여 학생운동의 주류가 된 그룹이 있었다. 86년 봄이 지나가면서 이들은 가면을 벗고 자신의 본얼굴을 당당하게 공개했다. 그들은 주사파였다. 주사파가 커밍아웃한 이래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아침 인사는 “어제 밤 대남 방송 들었냐?”였다. 못들은 학생은 들은 학생한테 방송 내용을 전달받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1987년이 되면서 주사파는 학생운동의 대다수 조직을 장악했다. 주사파는 신민당이 주도하는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 투쟁에 적극 참여할 것을 결정했다. 주체파와 달리 제헌의회 그룹은 직선제 개헌에 미온적이었고, 소수파였기 때문에 87년 6월 항쟁의 주도하던 대학생 시위대의 대부분은 주사파였다.

제헌의회 소집파에 속한 박종철이 희생되었을 때, 주사파는 그의 죽음을 직선제 개헌 투쟁에 적극 활용했다. 영화에서 “박종철을 살려내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는 장면에 등장하는 시위대는 대부분 주사파였다.

제헌의회소집파가 훗날 PD 계열(People’s Democracy/민중민주, ‘계급모순’을 강조)로 계승되었으므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자체만을 놓고 보면 PD 계열의 희생을 기반으로 해서 NL주사파(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 ‘민족모순’을 강조)가 직선제 투쟁에서 약진하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세월호 방명록에 “고맙다”라고 쓴 것과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박종철의 희생을 이용한 주사파
박종철의 희생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것은 남한의 주사파만이 아니다. 박종철 군은 1987년 3월 3일 김일성종합대학 조선어학부 조선어학과 3학년에 등록되어 89년 8월 10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물론 분신자살한 김세진 군에게 1990년 8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국통일상이 추서된 것이나, 이재호 군이 2006년 북조선에서 민족민주애국렬사에 추서된 것에 비하면 그 등급이 낮긴 하지만, “당시 서울대총학생회는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과 자매결연 관계를” 맺고 있었기에(‘통일뉴스’ 2006년 1월 4일 기사 “南 열사, 학생 31명, 北 ‘명예학생, 인사’ 등록” 참고) 그나마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장을 받게 되었다.

박종철 군이 인문대 언어학과였다는 것을 고려하여 다른 전공이 아닌 조선어학과에 등록시킨 것은 매우 세심한 배려라고 여겨진다(참고로 이한열 군도 1987년 7월 11일 평양의과대학 의학부 의학과 2학년에 등록되어 1992년 3월에 졸업했다.

경영학과 학생이 의대생으로 된 것이 본인 의사에 따른 것인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87년 5월 18일 명동성당에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경찰에 의해 축소·은폐되었다는 것이 폭로되자 직선제 투쟁은 대중적 호응을 받기 시작한다. 6월 10일에 예정된 규탄대회 하루 전 이한열 군(연세대 경영학과 86학번)이 최루탄에 직격탄을 맞아 부상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6·10항쟁 당시의 시위 모습. / 연합
6월 10일부터 대학생들의 가두투쟁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넥타이 부대가 시위대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정부가 6월 10일에 직장인들을 조기퇴근 시키고, 도심을 지나가는 지하철을 무정차 통과시켰기 때문에 도심의 직장인들은 회사에서 일찍 나왔는데 집으로 갈 교통수단이 없어 시내에 계속 머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서머타임 때문에 해가 길어진 터라 시위대에 일반 대중이 참여할 수 있는 호조건이 만들어졌다. 만약 넥타이부대가 합류하지 않았더라면 주사파가 주도하는 6월 항쟁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박종철 군과 이한열 군의 희생이 6월 항쟁 성공의 필요조건이었다면 넥타이부대의 합류는 충분조건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하고 지금까지 1987년 헌법 체제 하에서 30년을 살아왔다. 그렇다면 87년 6월 항쟁의 승자는 누구였고 패자는 누구였나? 얼핏 보면 군사독재정권이 패자고 넥타이부대를 포함한 민중이 승자인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그렇다. 하지만 6월 항쟁을 운동권 내부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진정한 승자는 주사파였고, 진정한 패자는 넥타이부대를 포함한 자유민주주의 세력이었다. PD 계열도 그 때 NL에게 밀린 이후로 지금까지 기를 못 펴고 있다. 2017년 11월 7일 유튜브로 올라온 영상(“주사파에게 ‘체제전쟁’ 선포한 이종혁 의원”)에서 이종혁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군사 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국민들에게 정부선택권만 돌려주면 이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번영된 나라로 잘 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0여 년이 지난 오늘 이것이 전략적 오류였음을 저는 오늘 국민 여러분께 자인하고자 합니다. 지금 이 나라는 주사파가 나라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1987년에 대통령 직선제 헌법 개정에 성공한 김영삼 계의 후예는 30년이 지난 후에 이렇게 말한 셈이다: “우리가 속았다.” 그러나 어디 속은 게 이종혁 최고위원뿐이겠는가? 사실 넥타이부대도 속았고, 멋모르고 시위에 참가한 모든 대학생, 시민들이 다 속았다. 넥타이부대의 승리는 결국 주사파에게 ‘네다바이’ 당했다.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만든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몰랐기에 당했다. 당시 30대 40대의 넥타이부대는 30년의 세월이 흐른 2017년에 “우리가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거리로 태극기를 들고 뛰쳐나왔다. 2017년의 태극기부대의 60대 70대는 다름 아닌 1987년의 넥타이부대다. 2017년 3월 1일 서울 도심에 태극기를 들고 모인 수십만의 시위대는 30년이란 긴 기만(欺瞞)의 세월을 보내고 이제 거짓에서 깨어나 각성된 시민이다.

이들은 영화에서 등장하는 넥타이부대를 보면서 어떤 느낌을 가질까? 직선제 개헌이 성공한 뒤 신민당은 정국의 주도권을 갖게 되었고, 주사파를 포함한 반국가세력은 신민당의 그늘 뒤에서 ‘민주화세력’이라는 완장을 차고 신분 세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87년부터 민주화세력은 자유민주주의를 확장해왔고, 그 과정에서 주사파의 세력과 영향력도 함께 확장되었다.

민주화세력 내부에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두 개의 세력이 섞여 있었지만 자유민주 세력과 인민민주 세력은 서로를 도와주고 보호해줬다. 그래서 반(反)국가세력을 제거하려고 하면 ‘왜 민주화세력을 탄압하느냐?’고 야단치면서 국가보안법을 무력화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김승규 당시 국정원장이 386 운동권 출신의 간첩단 사건인 ‘일심회’ 사건을 수사하다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이제 그만 하시라”고 권유받고 사임한 사건이다(위키리크스 공개 미국 외교전문 참고). 그래서 남조선 인민해방 혁명을 위해 직업적 혁명가들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점점 더 넓어져 왔다.

그래서 2017년 드디어 1987년 6월 항쟁의 주체가 당당하게 청와대에 입성하게 되었다. 자 그럼 이제 2018년에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초중고 교육을 바로 잡아야 한다. 좌파들이 교육을 장악하고 생산라인에서 좌파이념에 친화적인 세대를 끝없이 만들어내는데 이걸 그냥 내버려둔 채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영화 ‘1987년’에서 대공수사처 박 처장(김윤식 분)은 이렇게 말한다. “똑똑히 새기라우. 내래 빨갱이 잡는 거 방해하는 간나들은 무조건 빨갱이로 간주하갔어” 제5공화국 때부터 우파가 범한 결정적 실수는 이념전쟁을 대공(對共)부서에 일임하고 검거로 이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것이다. 물론 반국가세력의 핵심 분자는 검거해야 한다.

하지만 계속 왼쪽으로 기울어지는 나머지 대중들은 검거로 해결이 안 된다. 자유민주 세력은 그 동안 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 경제제도를 지키기 위해 자라나는 세대에게 지속적으로 개인의 자유의 가치를 깊이 있게 가르치지 않았던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 이제 초중고 교육의 주도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마침 2018년 6월에는 전국 17개 선거구에서 교육감 선거가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는 자유민주 세력의 잠재력을 가늠할 수 있는 시험대다. 2014년 교육감 선거에서는 보수 2명, 중도,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3명은 친전교조 성향의 교육감이 선출되었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가 압도적으로 승리해서 교육을 바로 잡으려면 첫째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각오를 갖고 교육이란 전쟁터에서 상대와 맞장을 붙을 수 있는 전사(戰士)가 선거전에 나가야 한다.


이념적으로 나약한 교육전문가가 보수랍시고 표를 얻어 교육감이 된 뒤에 좌파들 정책에 협력하는 꼴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둘째로, 자유시민 교육감 후보들은 자발적으로 단일화 과정에 참여해 민의가 결집되게끔 호소한다.

2018년에 반격의 교두보를 확보해 30년 동안 묵혀놓은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하는 원년(元年)이 되길 기도한다.

출처 : 미래한국(http://www.futurekorea.co.kr)







대한민국 현대사에 있어서 분명 민주화운동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자유민주화운동의 이면뒤에 1920년대에 시작되어 이 땅에 침투한 공산주의자들의 체제 전복, 적화운동이 존재했다.





이 두가지 운동은 전혀 다른 것임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운동은 민주화운동안으로 들어가 교묘하게 정체를 숨겨 왔다.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이 땅에 공산주의가 없는가? 






공산주의 추종세력들이 없는가?






누가 이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 라고 하겠는가?






정신차리자, 이승만, 박정희 시대보다도 북한을 추종하며, 혹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는 남파간첩들이 더 많은 시대이다.


오히려 대놓고 북한을 따르는 세력이 존재하는 시대이다.







문재인 정부의 실체를 보기 시작하면, 이 땅을 뒤흔드는 세력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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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문재인 정권의 본 모습이다.


연방정부란다.






각 지자체별 권력분립을 하게 해서 


각 도시별로 사회주의 노선을 완성한 뒤에 


북한 사회주의 체제의 완성으로 가려는....






연방정부....


연방제 통일.....







어떤 통일?


저들이 원하는 통일은 자유 민주주의 통일이 아니다.


김정은을 위대한 장군으로 모시는 북한 사회주의 통일이다.








대한민국은 이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급속도로 추진할 것이다.


대놓고 한미동맹 파괴하려 하고,


북한에 퍼주기를 통해 핵무기를 완성하고,


주한미군 철수를 끝까지 주장할 것이다.


그런 다음, 이런한 것들이 완성되었을 때에 북한+중국+러시아의 힘을 빌어


대한민국을 적화시키고 말 것이다.








이것이 문재인 정부, 현 주사파 정부의 속내이다.


평창 올림픽을 통해 보지 못했는가?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정부가 아니라는 것을~!


북한에 그저 좋아라 하는 정부이고,


김정은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정부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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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사기쇼

https://youtu.be/qvZWAHEPjkE



짜여진 각본대로 하면서
생방송 돌발인것 처럼 꾸며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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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中엔 침묵하고 美에 결연히 대응한다는 文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미국의 보호무역 공세에 대해 "당당하고 결연히 대응해 나가라"고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WTO 제소와 한·미 FTA 위반 여부를 검토하고 FTA 개정 협상을 통해서도 부당함을 적극 주장하라"고 했다. 수출 다변화로 미국 의존을 줄이라고도 했다. 청와대는 '안보'와 '통상'을 별개로 갖고 간다는 것이 문 대통령 생각이라고 했다. 안보 협력과는 별도로 통상 이슈에선 강경 대응으로 맞서겠다는 것이다.

한국에 과도하게 집중되고 있는 미국의 통상 보복 조치가 국제 통상 규범에 위반되는 부분이 있으면 WTO에 제소해야 한다. 한·미 FTA의 무(無)관세 정신에 위배되는지 여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WTO 규범은 미국이 명분으로 내세운 '국가 안보'엔 관세 보복을 허용하고 있다. 설사 제소해서 이긴다고 해도 몇 년의 시간이 걸려 피해 회복은 불가능하다. 한·미 FTA의 분쟁 해결 절차도 마찬가지다. 모두 실효적인 대응책이 될 수 없다.

'당당하고 결연하게'는 안보나 정치에 쓰이는 수사이지 경제 문제에 쓰이는 용어가 아니다. 이해득실을 주고받는 경제 논리에는 당당한 것도 결연한 것도 없다. 협상의 결과로 손해를 줄이고 이익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느냐가 문제다. 중규모 개방 국가인 한국의 통상 전략은 처음부터 끝까지 '실익'이어야 한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미국과 트럼프에 대해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한국에 대해 왜 이러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한국 정부의 누구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한다.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일각에선 중국은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상대이고, 일본과는 정상끼리 친밀한 관계여서 이도저도 아닌 한국이 희생양으로 떠올랐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사전에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트럼프 정부는 보호 무역 공세를 예고하고 출범했다. 그런데 한국 새 정부가 대미 통상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비상하게 대응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다 '정부가 무엇 하고 있느냐'는 비판이 나오자 갑자기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한다고 한다. 미국과 강 대 강으로 충돌할 경우 손에 쥔 통상 카드가 열세인 우리 쪽이 결국 손해볼 수밖에 없다. 감정 섞인 대응을 자제하면서 미국 측을 이해시켜서 윈·윈 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절대 불가능하지 않다. 일본이 해내고 있다.

사실 '당당하고 결연한 대응'은 중국의 사드 보복 때 나왔어야 했다. 사드 보복은 우리 군사 주권과 안보 전략에 개입하려는 압박이었다. 새 정부는 중국에 항의 한번 제대로 한 일이 없다. 당시 중국의 보복은 명백한 WTO 규정 위반이었지만 끝내 제소하지 않았다. 그러다 중국보다 국력이 압도적으로 큰 미국을 상대로는 당당하고 결연하게 대응하겠다고 한다. 중국이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을 이용해 압박할 때는 침묵하다 미국을 상대로는 수출 다변화를 한다고 한다. 균형이 맞지 않으면 넘어진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8021902822&Dep0=m.facebook.com#Redyho


중국은 큰나라
중국몽은 함께 이루어갈 꿈
북한은 대한민국이 흡수되어야 할 나라


이렇게 사상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있다


이것이 현실이 아니기를 바라지만, 이것은 현실이다

친중반미, 세월호 유족은 챙기면서 천안함 유족은 생각안하는 정부

천안함의 핵심 인물, 주범 김영철을 올림픽 폐막식에 초대한다는 기상천외한 정부

대한민국은 지금 어디로 가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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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북한에는 철저한
몇 가지의 특수교육이 있다고 한다

암살, 특수 지령 , 납치 , 정보 빼오기, 특사단 등등

국가에서 지령된 임무를
완성하지 못할 때에는 국가를 위해 죽어라
( 독침 미세한 마이싱 크기를 항시
(애리나 팔소매 옷속애 항상 숨기고 활동 
혹은 실패할 경우 혀 깨물고 자살

또한 부모나 자식 반드시 볼모 인질
실패할 경우 계급 완전 박탈
3 대까지 그들은 잔혹한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그리하여 모두 인간적 감정 보다는,
살벌한 살쾡이 눈을 지닌 기계에 가깝다.

또한 작전을 위해선 기막히게 속이는
연극 또 가미한다고 한다

예를들자면, 위장술 ( 중국인이 되기도
일본인이 되기도 홍콩인이 되기도
미국 교포가 되기도 하고  외국인과 위장 결혼
미리 그 지역에서 활동
커다란 지령일 경우는 20년간
시민인 척 속이고 살면서
위장 간첩 정보 빼기등

위장 부부 위장 가족. 등등
영화에서나 가능한 것이
실제 북한의 특수 교육에 있다고 한다

외국에서 급좋은 사람들이
북한 방문 관광이나, 방문할 경우엔
임신이 가장 잘되는 여성들 일명 애국 매춘 성상납
서비스 교육도 사실로 밝혀 졌다

또한 가장 낮은 시민들이
마을 계급을 얻기 위한 서로 배반자 고소 고발
(개한민국 좌빨도 매우 잘따라하는 툭하면 고소)
국가에 수령 수상을 누구도 비하 욕하는 말에
즉시 고발 신고 처벌

보리쌀 이나 강냉이 등 선물 받는다고 한다
이들은 오로지 “ (국가 수령 수령 만세 )
완전 쇠뇌 되어서 자유가 되어도
도무지 몇 세대가 흐를 때 까지
바뀔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서로 고소하기 바쁘고
사람은 기계화 잔인해 지는 것이다

그녀들의 임무는
오로지 미끼 자식 까질러 낳기
임신이 잘 되는 여성을 뽑는다고 한다

북으로 달러 혹은 금 을 보내야 하거나
이런 국가적 공부도 한다고 했다

당신의 피가 여기에 있소 라는
이렇듯 특수한 나라
기계적인 나라
속이 수시로 바뀌는 나라
진심을 서로 모른다고 하는 나라

그리고 선전용 기독교 교회
선전용 화목한 가족
선전용 예술단 등등이 있다
선전용 도시 선전용 마을 사람 등등

애초 김일성 독재에
가장 이기적 잘못된 따스한 화합보다 그는
무엇보다 자신의 아방궁이 허물어지길 원치 않았고 ,
자신만의 아방궁 독재를 지키기 위한
수단방법이 나날이 발전되어
야금야금 뺏기 사상이 전공의 나라 였기에 노예나라
70 년 독재가 가능 했던 것 !

한국 역시
오늘의 높은 자리의 뭐며 다 평양 밥 먹고자란
후원으로 간첩이 스며들어 흡수하기 시작한 것

두뇌가 나쁜 생각 쪽으로 비상한 이들이기에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차가운 시멘트 심장을 지닌 얼굴들에 가깝다

그리고 몇몇 특수 계급 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
북한의 예쁜 여성이나
중고등 어린 학생 강제 성 상납은
기본으로 되어 있다.

국가적 수령을 위하여
누구도 그것은 당연한 것 이라고
쇠뇌 되어 있다 거역할 수도 없고 외려 영광 이라고 .
정말 무섭고 더럽고 잔인하고 불쌍한 나라다
그것이 바로 북한 피.

일본 조총련 <북송선 강제 납치 >
북조선 김일성 독재
북한은 절대 (파라다이스는 없다 )
저자 책 에서도 이와 같은
비슷한 말들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민간인 교사 여학생 심지어 어린이까지
수천명 북송선 강제 납치를 했었다.
당시 일본의 거센 항의 끝에
돌아온 일본 사람은  겨우 20명 뿐이었다

우리는 북한을 동포라고 하기에도
너무 닮고싶지 않은 독재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정말 이런 사상 닮고 싶지가 않다
다혈질의 나라 대한민국 좌좀비빨들에게 많이 나오는 ......

지금 문바지 하는 짓은 ,
일본 순사보다  더 잔인하고 비열 하다.
공산주의 사상, 독재 피 이어받아
지금 대한민국을 웃으며 엿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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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실상을 알면 김정은 정권과 절대 손잡을 수 없습니다

이미 극악무도한 악마의 탈을 쓰고 자신의 정권유지, 체제유지를 위해 피의 숙청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정권이기 때문입니다

북한이 다른나라인가요?
아닙니다

해방이후 신탁통치로 분한통치되던 때에 북한은 46년도에 소련 스탈린의 지령을 받아 김일성이 공산정권을 이미 세우게 됩니다

이에 따라 이승만 대통령은 48년도에 남한에 대한민국 정부수립과 함께 건국을 선포하게 됩니다

북한에서 소련과 김일성의 공산화를 보지 못하면 마치 이승만이 김구의 의견을 무시하고 통일을 막았다고 왜곡된 시선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명백히 말하면 김구가 김일성을 만나 연방제 통일에 합의했던 것이 중요한 팩트입니다

6.25는 언제 일어났을까요?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반미, 반전을 들고 일어나자 주한미군이 철수하게 되고 이에 따라 김일성이 소련과 연합하여 쳐들어온것이 6.25입니다

김일성 그리고 소련과 중공군에 의해 한반도 전체가 점령당하기 직전에 공산화로부터 이 땅을 지켜준 나라가 누구입니까?
 
3만여명의 희생을 낸 미군과 연합군에 의해 대한민국을 수복하고 이 땅에 자유 민주주의 나라가 되도록 힘쓴 인물들이 누구입니까?

북한의 주민들,우리 동포들을 생각하되 북한 공산정권은 반드시 파멸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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